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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 :: 청자는 3세기경 중국에서 나무가 탄 후 재가 앉으면서 재속의 철분과 유리성분이 유리막을 형성, 옥과 유사한 푸른색의 옷이 입혀지는 것을 발견된 후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고 하며, 그러한 연유로 청자를 '불에서 구워낸 옥'이라 한다. 청자는 철분이 조금 섞인 찰흙으로 형태를 만들고 다듬어, 여러 가지 기법으로 문양을 새겨넣고 말린 후, 800℃ 열로 초벌구이를 하고, 자연유약을 입혀 다시 가마에 넣어 약1300℃로 환원 재벌구이 한 비색의 자기를 말하며, 청자의 아름다운 푸른 색깔을 중국에서는 秘色이라 하였고, 고려에서는 翡色(비취옥색)이라고 하였다.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은 청자를 먼저 만든 중국인들에게도 동경의 대상이 되어, 고려 인종때 송나라 사신의 일행으로 왔던 서긍은『선화봉사고려도경』에서 '고려의 도자기는 그 솜씨가 절묘하고, 빛깔이 더욱 아름답다.'라고 하였고, 또 송나라의 태평노인은 저서『수중금』에서 '고려청자의 비색이 천하제일'이라고 감탄하면서 당시 세계제일의 28개 품목 중 하나로 꼽았다고 한다. 고려청자는 최고의 문화생활을 향유하던 귀족들의 생활에 맞는 공예품으로써, 그 화려함과 세련됨으로 지금까지 많은 걸작품을 남기고 있으며, 장식기법에 따라 아무 문양도 없는 소문청자(순청자)를 비롯하여, 사물(인물, 동·식물)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상형청자, 음각으로 문양를 나타낸 음각청자, 양각으로 문양를 장식한 양각청자, 기벽을 뚫어서 문양을 나타낸 투각청자, 산화동으로 문양을 그린 붉은 색의 진사청자, 산화철로 문양을 그린 검은 색 또는 흑갈색의 철화청자, 백토나 흑토로 점과 그림을 그려 넣은 퇴화청자, 표면전체에 철사물감을 바른 흑청색 또는 적갈색의 철채청자, 청자토·백토·자토 3가지를 한데 섞어 이겨 만든 연리문청자, 유약을 바른 표면 위에 금분을 입혀 문양을 나타낸 화금청자(금채청자) 등이 있다. 또 청자의 태토 위에 음각무늬를 새기고, 그 속에 백토나 자토로 메운 뒤 유약을 입혀 구우면, 백토는 희게 자토는 검게 되는 상감청자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고려사람만의 독창적 미의식의 발현이다. 한편 청자에 자주 나타나는 문양(구름과 학, 버드나무와 오리, 들국화 등)을 통해 우리는 불교신앙을 바탕으로 한 고려인들의 삶의 태도인 유유자적한 마음과 현세보다는 다가올 내세의 고요하고 적막한 피안의 세계 즉, 선의 세계를 동경하는 독특한 우리민족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청자는 은은하면서 맑고 신비로운 비색, 세련되고 유려한 선의 흐름을 지닌 형태, 기물과 조화롭게 일치된 상감문양, 세계 최초로 도자기에 산화동으로 선홍의 발색을 성공시킨 기술적 우수성 등이 함께 어울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독창적인 도자기로서 '우리민족의 가장 대표적 문화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
:: 분청사기 ::
고려시대 귀족층에서 사용되던 청자가 대량생산되는 생활자기로 대중화 된 분청사기(분장회청사기의 준말)는
회청색의 태토에 백토의 분을 발라 장식한 독특한 자기이며, 다양한 분장기법과 자유분방한 조형미와 민예적인 문양 등을 특징으로 '가장 한국적인
미를 간직한 민족자기'로 미술사가들에 의해 오래 전부터 평가되어왔다.
한편 백토분장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문양을 긁어낸 곳에 백토나
자토를 메워 넣은 상감분청사기, 도장을 반복해 찍고 압인된 곳에 백토를 메워 넣은 인화분청사기, 문양을 선으로 긁어내어 백색바탕에 회색무늬가
새겨진 선각분청사기(조화분청사기), 문양을 그린 후 나머지 부분을 긁어낸 박지분청사기, 백토를 입힌 위에 산화철로 그림을 그린 철화분청사기,
백토를 귀얄(풀비)에 묻혀 겉면에 바른 귀얄분청사기, 그릇을 백토 물에 덤벙 담갔다가 꺼낸 덤벙분청사기 순으로 변해갔다.
상감분청사기는
초기의 선상감에서 15세기중엽에 면상감으로, 인화분청사기는 주로 경상도지방에서, 선각?박지?덤벙분청사기는 주로 전라도지방에서, 철화분청사기는
충청도 계룡산에서 주로 생산되어 '계룡산분청사기'로도 불리운다.
분청사기의 문양은 사실적 문양을 대담하게 생략하고 단순화시켜 수더분하지만 매우 현대적이라고 할만큼 도공의 깊고 드높은 조형적 역량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기형은 풍만하고 활달하며 자유분방한 형태로 안정감있고 실용적인 기물들이 많은데, 청자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장군·자라병·편병 같은 특수한 병 종류가 많이 만들어졌다.
한편 우리의 밥그릇인 막사발이 임진왜란을 전후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 들의 눈에 띠어 찻잔(다완)으로 사용되었고, 당시 일본에서 좋은 찻잔(고려다완)을 갖는다는 것은 명예와 부의 상징으로, 나중엔 성 하나와도 바꿀 만큼 신과 같은 존재로 여겨 거기다 절을 하고 애지중지하였으며 그 그릇들 중에는 오늘날 일본 국보로 지정된 것이 적지 아니하다.
우리의 그릇들 속에서 일본인 들이 발견한 미감은 '자연이야말로 불완전한 것 같지만 그 속에 완전함이 있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다완을 연구하는 일본의 한 전문가는 '다완은 조선시대의 막사발이긴 하지만, 우리 일본인 들에게는 신앙 그 자체이며 우리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했고, 한없이 기쁘게 했고, 숭고하게 했고, 우리의 마음을 영원한 안식처로 이끌어 주었던, 우리에게는 보물 아니 신과도 같은 그런 존재였다'라고 하였다.
한편 분청사기에 대해서는 '형태자체가 자연이며, 그 안에 온 우주가 담겨
있으며, 그 깊이 또한 무한하다.'고 감탄하면서 그 섬세함과 화려함 그리고 담백함이 한데 어우러진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부러워하였다.
:: 백자
::
백자는 백토로 그릇의 형태를 만들고 그
표면에 여러가지 장식을 한 다음 투명한 백색의 유약을 입혀 구워낸 도자기를 말하며, 설백색, 유백색, 청백색, 회백색의 경질백자가 조선시대
전기간에 걸쳐 만들어졌고, 15세기 중엽에는 조선왕실과 중앙 관청소용의 백자를 공급하기 위한 관영제작소인 분원을 경기도 광주지역에 설치하였다.
분원에서 만드는 청화백자의 그림은 중국에서 수입한 매우 귀한 안료를 사용하였으므로 도공이 아닌 전문화공이 그렸으며, 차츰 안료를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지방민요에서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철사안료로 철화백자를 만들어 내었다.
조선백자는 잘 다듬어진 단아한 형태와 순백의 바탕색, 그리고 그 위에 빛깔있는 안료를 사용하여 산수화나 용 또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식물과 곤충 등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인데, 특히 조선후기에 다양한 형태와 장식기법을 사용한 화려한 백자가 만들어지면서 더욱 다양한 면모를 보였다
백자는 장식기법과 안료에 따라 아무 문양도 없는 소문, 음각, 양각, 상형, 투각기법의 순백자, 음각한 부분에 자토를 메워 넣은 상감백자, 코발트안료(회청)로 그린 청색의 청화백자, 철사안료로 그린 갈색이나 흑갈색의 철화백자, 산화동으로 그린 붉은 색의 진사백자 등으로 구분된다.
이밖에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철사안료를 칠한 철채, 산화동을 칠한 진사채, 코발트안료를 칠한 청화채, 한 작품에서 철채와 청화채 또는 진사채와 청화채 등 두 가지가 혼용된 철채청화와 진사청화 등의 채색백자들과 흑갈색 또는 암갈색인 흑유(석간주)등이 있다.
한편 백자는 입혀진 유약에 따라 초기 16세기에 회백색, 17세기에 우유빛이
도는 유백색, 18세기 금사리가마에서 눈같이 흰 설백색, 19세기 이후 분원리가마에서 파르스름한 빛을 띤 맑고 청초한 순백색 순으로 변하였으며,
순백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한 백자는 순백에 대한 조선인의 미감을 충실히 반영한 도자기로, 의관을 정제하고 차분히 서 있는 듯한 모습, 무심하고
소탈한 서민적 모습, 마치 자연을 보는 듯한 아름다움 등에서 성리학적인 정신세계와 검소·검약을 숭상하는 절제의 미와 함께 청초하고
간결?단아하면서도 기품 있는 조선백자의 품격을 느낄 수 있다.
::
다완::
우리 서민들이 흔히
쓰던 막사발이 임진왜란을 전후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들의 눈에 띠어 찻잔(다완) 으로 사용되었고, 당시 일본에서 좋은 찻잔(고려다완)을
갖는다는 것은 명예와 부의 상징으로, 나중엔 성 하나와도 바꿀 만큼 신과 같은 존재로 여겨 절을 하고 애지중지하였으며 그 그릇들 중에는 오늘날
일본 국보로 지정된 것이 적지 아니하다.
손은 익을대로 익고 마음은 욕심이 없는 우리 사기장들의 무심한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우리의
그릇들 속에서, 일본인들이 발견한 미감은 '자연이야말로 불완전한 것 같지만 그 속에 완전함이 있다'는 사고였기 때문에, 다완을 연구하는 일본의
한 전문가는 '다완은 조선시대의 막사발이긴 하지만, 우리일본인들에게는 신앙 그 자체이며 우리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했고, 한없이 기쁘게 했고,
숭고하게 했고, 영원한 안식처로 이끌어 주었던, 우리에게는 보물 아니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고 하였다.
다완의 종류로는,
정호(이도)다완; 일본의
국보인 「기사에몽이도」라 불리는 가장 오래된 다완으로 호쾌하기 그지없다. 물레 성형시 마구 당겨 올려, 굵은 물레자국 줄이 크고 깊게 가 있다.
굽 부근은 유약이 거칠게 뭉쳐 있어 이슬이 맺힌 듯하며, 그릇의 빛깔은 살구색을 띠어 부드럽고 오래보아도 눈이 피로하지 않다. 정호다완은 큰
것일수록 오래된 것이다. [지름 15.5㎝, 높이 9.1㎝(굽높이 2.0㎝)]
웅천다완; 완전한 사발형으로, 전 테두리는 끝이 밖으로 젖혀 있으며, 굽은 죽절로 되어 있고, 굽 내부는
둥글게 깎여 있다. [지름 14.2㎝, 높이 9.2㎝]
삼도(미시마)다완;
17세기 초기에 일본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만든 것으로, 안밖이 모두 빗금으로 자연스럽게 시문하고, 안쪽바닥에 꽃무늬를 찍은 다완이다. [지름
14.8㎝, 높이 6.2㎝ (굽높이0.9㎝)]
김해다완; 모습이 당당하며
몸통전체에 고양이가 할퀸 듯한 자국이 있고, 4개의 작은 할굽이 밖으로 열려있다. [지름 12.0㎝, 높이 9.0㎝]
입학다완;
배 중간부가 약간 조여지고, 전 둘레 끝 부분이 밖으로 비스듬히 젖혀있다. 배의 두 곳에 서있는 학이 흑백의 상감으로 나타나 있고,
그릇표면 안팎에 붉은 얼룩무늬가 나타나 좋은 경색을 하고 있다. 굽은 3곳을 크게 절취한 칼바람자리가 돌려 있으며, 굽 내는 넓게 깎여 가운데가
도도록하게 올라와 있다. [지름 11.3㎝, 높이 10.1㎝ (굽높이1.0㎝)]
계룡산다완; 이 다완은 굽는 방법이 서툴렀는지 5개가 함께 붙어있었던 것을 4개를 깨뜨리고 1개만 남았다고
하며, 몸통에 상당히 숙련된 철화무늬가 그려져 있다. [지름 14.5㎝, 높이 6.5㎝ (굽높이 1.0㎝)]
덤벙(분인)다완; 배는 불쑥하게 부풀어 있으며, 전 테두리는 밖으로 열려있다. 안팎 모두 백유를 두껍게
얼룩이 지게 입히고, 유약이 입혀지지 않은 곳은 쐐기형으로 노출되어 붉게 구워진 부분이 있는 다완이다. [지름 15.4㎝, 높이 8.3㎝]
귀얄(하게메,쇄모목)다완; 귀얄(붓이나 솔)로 백토를 빠르게 발라 지토가 보이는
곳도 있으나,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기형은 적고 얕은 사발형이며, 전 테두리가 끝에서 젖혀져 있다. 굽 내는 거칠게 깎였으며, 밑꼭지는
중앙부가 작고 높게 돌출되어 있다. [지름 12.7㎝, 높이 5.6㎝]
천목(흑유)다완; 전 테두리는 비틀 듯이
젖혀 있고, 그 밑은 약간 들어가 있으며, 전 언저리는 엷은 다색을 띠고 있다. 굽은 유약이 입혀지지 않아 지토가 그대로 보이고, 굽 주변에
두터운 유약의 덩어리가 흐른 모양대로 보인다. [지름 12.6㎝, 높이 7.3㎝ (굽높이0.7㎝)]
이라보다완; 유약이 엷게 입혀져 표면이
그을린 것같이 까칠까칠(일어로 '이라이라')하게 느껴진다고 해서 이라보라 부르게 됐으며, 굽이 잘 정리되어 있다. [지름 15.5㎝, 높이
8.3㎝ (굽높이1.1㎝)]
두두옥다완; 전 테두리 밑에 약간 귀얄무늬가 있어 솔로 칠한 듯 하며,굽은 얕고 굽
내는 얕게 깎여 있다. 그릇전체의 색은 엷은 감색을 띠고있다. [지름 14.0㎝, 높이 6.6㎝]
오기다완; 물레성형은 담담한 사발형으로,
굽이 높고 안쪽은 깔끔하게 깎여 있다.
[지름 16.5㎝, 높이 10.8㎝]
:: 옹기
::
우리민족의 대표적
전통그릇인 옹기는 가마 안에 공기를 들어가게 해서 구워낸 숨쉬는 그릇이며, 습도도 조절하고 청정작용도 하는 인류가 만든 그릇 중 '자연에 가장
가까운 그릇'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옹기에 사용하는 진흙에는 가는모래가 섞여 있어 수많은 기공을 만드므로, 공기가 잘 통해서
식품의 발효와 보존에 최적일 뿐 아니라, 천연잿물을 유약으로 사용한 무독?무해성 용기이기 때문이다. 옹기는 고려에서 조선조로 이행되면서 생활이
다양해지고 풍요롭게 됨에 따라, 용도에 맞는 다양한 형태와 지방마다 독특한 모양과 이름을 갖게 되었고,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독(옹기)은 대체로
조선 초기부터였다고 한다.
옹기에는 독과 단지 등을 비롯하여 소줏고리, 촛병, 앵병, 술병, 자라병, 약탕기, 뚝배기, 시루, 물두멍, 수박동이, 장군, 등잔, 연가, 화로, 부손, 부, 훈, 장구, 연적, 필세 등 많은 종류가 있고, 그 다양함과 소박함은 우리 서민의 심성으로 다음과 같이 비유되기도 하였다.
출처;이천도자기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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